월세 320에 권리금 2억. 지난해 3월,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50m 떨어진 1층 코너에 나온 매물이다. 내가 이 가게를 알게 된 건 중개사무소가 아니라, 바로 옆 건물에서 7년째 옷가게를 하는 지인의 전화 한 통이었다. "형, 저기 이번에 나오는 거 알아? 전에 무슨 가게였는지 알지?" 그렇다. 그 자리는 1년 사이에만 세 번 바뀐, 이른바 '저주받은' 점포였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변천사를 실거래 내역서로 갖고 있었다.
월 매출 2800의 함정
보통 사람들은 권리금이 높으면 장사가 잘된다고 오해한다. 틀렸다. 홍대 같은 유흥 상권 정보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안다. 여기서 권리금이 높다는 건 오히려 위험 신호일 가능성이 더 크다. 왜? 그 돈을 받아내려면 본인도 그만큼 써야 하니까.
2023년 초 그 매장의 실거래 내역. 월 평균 매출은 2,800만원 선이었다. 식자재 원가율 38%, 인건비로 4명 주 6일 근무 기준 920만원, 여기에 월세 350에 관리비 60. 계산기 두드리는 순간 딱 나온다. 본인 월급은커녕, 카드값 맞추려면 토·일요일 매출에 목숨 걸어야 하는 구조.
그런데 권리금을 2억을 부른 거다. 여기서부터 수상하다.
임대인과 권리금의 역설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게, 권리금 2억이 형성되는 건 진짜 잘돼서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탈출구다. 이걸 이해하려면 2022년 말 기준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의 허점을 알아야 한다. 법적으로 권리금 회수 기회는 신규 임차인과의 계약이 성사돼야 발생하는데, 이때 임대인이 '이미 나는 조건이 다르다'고 버티면 기존 세입자는 권리금을 날린다.
내가 들여다본 저 가게의 전 세입자는 계약 기간 2년 중 1년 4개월 만에 발을 뺐다. 권리금을 1억 6,000에 받고 들어왔는데, 실제로 나갈 때는 1,800만원만 건지고 나머지는 공중분해. 왜? 임대인이 신규 임차인에게 요구한 보증금이 5000에서 7000으로 올렸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임대인은 장사가 아니라 세입자 교체로 마진을 보는 셈이다.
살아남은 가게는 뭐가 다른가
같은 골목에서 15m 떨어진 곳에 4년째 운영 중인 와인집이 있다. 이 집 사장님과 작년 가을에 2시간가량 술 마시면서 들은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첫째, 계약서에 '영업시간 제한 및 확장 가능 조항'을 박았다. 홍대는 밤 12시 이후가 본게임인데, 대부분 건물주가 소음 문제로 11시 이후 영업을 제한하려 든다. 이 와인집은 특이하게도 주거층과 상가층을 분리한 건물을 골랐고, 계약 당시 야간 영업 허용을 특약으로 넣었다. 이런 조건은 임차인이 먼저 요구하지 않으면 절대 들어주지 않는다.
둘째, 이건 더 교과서적인 전략인데, 월세 대비 인건비 비율을 28% 아래로 묶어놨다. 주방 1명, 홀 1명, 사장 본인이 주 2회 오픈조로 들어가는 구조. 4명 고용하던 위의 폐업 식당과 비교하면, 매출은 비슷해도 순이익에서 4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이 사장님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권리금 협상 때 2년 내 월 매출 하락 시 권리금 일부 반환 조항을 특약으로 걸었다. 말도 안 되는 조건 같지만, 실제로 3년 전에 이걸 주장해서 들어온 임차인을 나는 봤다.
그래서 그 2억짜리 가게는?
결국 다른 사람이 들어갔다. 2023년 5월. 그리고 6개월 만에 다시 권리금이 붙어 나왔다. 이번엔 2억 3,000만원이었다. 월세는 130으로 올랐고. 이걸 보면서 드는 생각은 단 하나다. 권리금이라는 숫자 뒤에는 항상 누군가의 빚이 숨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빚은 대부분 다음 사람에게 전가된다는 것.
홍대 상권에서 살아남는 건 마케팅도, 메뉴도 아니다. 계약서를 얼마나 아는가, 그리고 숫자 앞에서 정직해질 수 있는가. 결국은 그거다.